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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3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에도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하게 만들었던, 오랜만에 만난 묵직한 수작 <오디세이>입니다.

단순한 영웅의 모험과 귀환을 넘어, 나는 지금 과연 올바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습니다.

오디세이 영화포스터



속죄의 서사로 다시 풀어낸  놀란의 이야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기본적으로 귀환의 이야기입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노스토스(Nostos)'라고 부르는 이 귀환 서사는 전쟁을 마친 영웅이 온갖 시련을 지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오디세우스에게 그 목적지는 바로 이타카였습니다.


그런데 놀란의 <오디세이>를 보고 있으면 단순히 "집에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속죄의 여정으로 다시 해석하는 느낌입니다.


음유시인의 노래에 등장하는 "한 얼굴, 한 함대, 한 전쟁, 한 인간"이라는 문장은 영화 전체를 압축해 놓은 듯했습니다.
한 인간의 선택이 전쟁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결국 그 모든 결과가 다시 한 인간에게 돌아옵니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이 장면이 스쳐 지나갔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이게 영화 전체의 암시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오디세우스를 단순한 영웅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의 뛰어난 지략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만든 힘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비극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래서 영화 속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와 마주하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기억과 망각 사이, 칼립소의 섬과 사이렌

제가 샤를리즈 테론을 좋아해서 사심이 들어갔지만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칼립소의 섬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원작에서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섬에 붙잡아두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이야기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풀어냅니다.


그녀가 있는 섬은 단순히 오디세우스가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세상과 시간으로부터 오디세우스를 숨겨놓은 공간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기억과 망각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입니다. 원작에서 연꽃을 먹는 일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잃게 만드는 망각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소재를 단순한 유혹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디세우스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직면하도록 만듭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도 내가 가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면 결국 나를 붙잡아두는 섬에 지나지 않을까. 신화 속 이야기를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사이렌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원작에서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자신을 돛대에 묶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단순히 위험한 유혹을 피하는 이야기를 넘어 자신이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입니다. 결국 오디세우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괴물이나 바다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칼립소와 사이렌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것이 행복일까, 아니면 기억하고 책임지는 것이 속죄일까.


귀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것은 '귀환'의 의미였습니다. 이타카에 도착한다고 정말 집으로 돌아온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오디세우스 역시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영화가 보여주는 귀환은 단순히 지도 위의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관계와 기억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아르고스(개)의 존재가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맷 데이먼, 샤를리즈 테론, 앤 해서웨이와 더 불어 저는 4번째 기억에 남는 배우? 였습니다. 사람들이 오디세우스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르고스가 그를 알아보는 모습은 단순히 감동적인 장면 이상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왕으로서의 명성도, 전쟁에서의 업적도 아닌 그 사람 자체를 기억하는 존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르고스의 죽음은 저에게 과거의 오디세우스를 기억하는 마지막 증거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왕좌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자신의 지략으로 타인의 운명까지 움직였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의 미래를 자신의 손에 쥐지 않는 선택을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얻으려 했던 사람이 마지막에야 손을 놓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귀환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러닝타임이 3시간 가까운데 지루하지 않나요?

A. 제 기준으로는 정말 러닝타임내내 지루함 없이 집중을 했습니다. 다만 무조건 IMAX로 봐야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으나 2D로 관람했지만 웅장한 사운드로 인해 충분히 심장의 쿵쾅거림을 느낄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오히려 저처럼 소리에 민감하신분들은 IMAX가 부담 스러울것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Q. 캐스팅에서 특별히 눈에 띈 배우가 있었나요?

A. 맷 데이먼의 묵직한 중년 생존자 연기가 영화의 톤을 잡아줬다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보는 로버트 패틴슨도 반가웠고, 수술 이슈(?)가 있었던 엘리엇 페이지의 출연도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가 남긴 것

"나는 지금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가?" 목적지를 알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는 처음부터 분명한 목적지였지만,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그는 수많은 선택의 결과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말하는 귀환은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나온 길을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방향을 다시 선택하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관을 나선 뒤에도 꽤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가 정말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그리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