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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의 아폴론>은 1960년대 일본 사세보를 배경으로, 피아노를 치는 카오루와 드럼을 연주하는 센타로가 재즈를 통해 우정을 쌓아가는 청춘 영화입니다음악과 첫사랑, 우정과 상처가 어우러진 이야기 속에서 세 인물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언덕길의아폴론 영화포스터

 

두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언덕길의 아폴론>에서 리츠코는 단순한 삼각관계의 한축으로만 보기에는 아까운 인물입니다. 카오루와 센타로가 음악을 통해 가까워지는 동안 리츠코는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센타로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리츠코에게 센타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반면 카오루에게 리츠코는 처음으로 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 사람의 관계에는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결이 생깁니다.

 

흥미로운 점은 리츠코가 두 사람의 음악을 직접 연주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을 통해 변화하는 관계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다는 것입니다. 카오루와 센타로가 함께 연주할수록 두 사람의 우정은 깊어지고, 그 과정에서 리츠코의 마음 역시 복잡해집니다. 영화는 이를 과장된 갈등으로 끌고 가지 않고, 각자의 타이밍과 감정이 조금씩 어긋나는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세 사람의 청춘이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리츠코의 감정은 두 남자의 우정만큼이나 영화의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녀의 선택에도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셈세한 감정의 교차가 영화에 단순한 로맨스 이상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1960년대 일본의 풍경이 주는 '또 다른 매력'

영화의 매력은 음악뿐만 아니라 1960년대 일본의 풍경을 담아낸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언덕길의 아폴론>의 무대인 나가사키현 사세보는 현대적인 도시와는 다른 소박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언덕길을 따라 이어지는 주택가와 학교, 오래된 상점, 성당 주변의 풍경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특히 제목에 등장하는 '언덕길'은 영화에서 단순한 배경 이상의 느낌을 줍니다. 카오루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센타로와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과정이 이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오르막 길은 힘겹지만 결국 어딘가에 도착하게 만드는 길이기도합니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의 불안과 설렘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잘 어울립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거대한 사건보다 평범한 등굣길이나 친구와 함께 걷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화려한 시대극처럼 1960년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학생들의 일상 속에 시대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이 인상적입니다.

 

여기에 당시의 교복과 자동차, 학교 풍경, 거리의 간판 같은 세부적이 요소가 더해지면서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이 자연스럽게 살아납니다. 음악과 공간, 시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영화만의 따뜻한 색감을 만들어냅니다. 

 

만화원작을 실사영화로 

<언덕길의 아폴론>은 코다마 유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원작이 가진 섬세한 감정선을 실사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음악과 배우들의 관계였습니다. 특히 카오루의 피아노와 센타로의 드럼이 실제로 하나의 연주를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단순히 대역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영화의 생생한 느낌을 살리기 어려웠습니다.


영화에서 음악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두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자체가 캐릭터의 성격과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카오루는 처음에는 규칙과 악보에 익숙한 인물이고, 센타로는 본능적으로 리듬을 만들어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면서 조금씩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은 곧 두 사람의 성장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음악 영화나 첫사랑 이야기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원작의 청춘드라마에 재즈라는 음악적 요소를 결합하고, 이를 1960년대 사세보라는 공간 안에 배치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영화를 본 뒤 원작만화를 함께 찾아보면 같은 이야기가 매체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만화를 이미 읽은 관객이라면 익숙한 장면을 현실적인 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재미도 있고, 원작을 모르는 관객이라면 음악을 중심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따라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결론

고마츠 나나 때문에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제 마음에 남은 것은 배우보다도 오래전 억지로 배웠던 피아노였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시작했던 피아노가 그때는 그렇게 싫었는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나니 다시 한번 건반 앞에 앉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잊고 지냈던 마음속 무언가를 다시 꺼내볼 용기를 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붙들고 있는 장면은 10년 후의 재회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도, 주변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지만, 그곳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드럼 소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래전의 시간을 음악 하나로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 참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악기를 배우다 포기했던 기억이 있는 분이라면, 혹은 문득 오래된 친구 한 사람이 떠오르는 날이라면 <언덕길의 아폴론>을 한 번쯤 꺼내보셔도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