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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 감독의 <라스트 레터>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아련한 영상미에 먼저 눈이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남자 주인공 쿄시로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화면이 아니라 제 이야기 같았거든요. 자신감을 잃으면 사람이 어떻게 멈춰버리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움직이는지. 그 흐름이 이 영화 안에 조용히 담겨 있었습니다.

라스트레터 영화포스터



자기 복제의 함정

쿄시로는 소설가입니다. 첫사랑 미사키와의 기억을 글로 옮겨 화려하게 등단했지만, 그 이후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자기 복제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복제란 과거 자신이 만들어낸 성공 방식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창작을 회피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처음엔 괜찮아 보입니다. 익숙한 방식이니까요. 그런데 결국 그 안에서 작가는 죽어갑니다.

제 경험상 직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생깁니다. 한 번 잘 됐던 방법을 계속 우려먹다가 어느 순간 그게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그때 진짜 무력감이 옵니다. 쿄시로가 딱 그 자리에 있었던 겁니다. 자신이 쓸 수 있다는 믿음이 바닥난 상태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워집니다.

영화는 미사키의 장례식을 시작으로 쿄시로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정을 그립니다. 사실 쿄시로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유리가 언니에게 러브레터를 써보라고 권유했기 때문이고, 그 편지에서 글솜씨를 발견한 미사키가 직접 글을 써보라고 격려했기 때문입니다. 시작 자체가 타인의 믿음에서 비롯된 셈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근원이 사라지고 나자 쿄시로는 멈춰버렸습니다. 영화는 이런 모습을 통해 재능만으로는 사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누군가의 응원과 믿음이 때로는 인생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오마주

<라스트 레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이 25년 전 자신의 작품 <러브레터>를 오마주한 영화입니다. 비 내리는 여름 장례식과 눈 내리는 겨울 추모식, 잘못 전달된 편지가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만드는 구조, 도서관 사서 여주인공이 모교를 방문해 사진을 찍는 장면까지. <러브레터>를 본 관객이라면 강한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로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습니다. 감독 자신도 쿄시로와 비슷한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닐까요. 가장 빛났던 시절의 감성을 다시 꺼내어, 이번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재구성하는 작업. 그게 자기 복제가 아니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책 사인 장면과 졸업 연설문은 각각 세 번씩 등장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장치입니다. 특히 <러브레터>에서 이츠키가 도서 카드에 그려 넣은 책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점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소설은 기억과 시간의 회복을 통해 자아를 재발견하는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쿄시로가 결국 찾은 것도 그겁니다.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실제로 닿았다는 확인. 그 확인이 멈춰 있던 작가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작은 성취를 쌓고, 그게 타인에게 의미 있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 조금씩 자랍니다. 쿄시로도 결국 그 방식으로 회복했습니다. 아유미의 조롱 섞인 원망과 아토의 날카로운 직격탄 사이에서도, 자신의 글이 미사키에게 유일한 빛이었다는 사실 하나가 그를 다시 앞으로 밀어낸 겁니다.

 

문제해결 그리고 사랑

업무를 하다 보면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럴 때마다 틈날 때마다 그 문제를 머릿속에 꺼내 들고, 자기 전에도 잠깐씩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며칠 뒤 전혀 엉뚱한 자리에서 실마리가 잡히는 경험을 여러 번 했거든요.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뇌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는 현상이었습니다.

의식적으로 문제에서 벗어나 있는 동안에도 뇌가 백그라운드에서 계속 해당 문제를 처리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즉,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보다 한 번 내려놓고 다른 자극을 받을 때 오히려 돌파구가 열린다는 겁니다.

쿄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사키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어떻게 보면 창작의 부화 단계였을 겁니다. 전남편 아토를 만나 예상치 못한 직격탄을 맞고, 미사키의 딸 아유미를 통해 자신의 책과 편지가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그 순간이 쿄시로에게는 오래 방치해 두었던 문제의 해답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마주할수록 잃어버렸던 창작의 이유 역시 조금씩 되찾아가기 시작합니다. 

단, 한 가지는 분명히 다릅니다. 사랑에 관한 문제는 이 뇌과학 공식이 잘 적용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은 혼자 고민한 해답이 오히려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신감이 없을 때는 특히 더 그랬습니다. 소통과 배려 없이 혼자만의 논리로 풀려고 하면 결국 어긋나게 됩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수많은 엇갈림이 바로 그걸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가 러브레터 오마주라는데, 따로 봐도 괜찮나요?

A. 충분히 따로 봐도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다만 <러브레터>를 먼저 보고 나면 감독이 심어놓은 장치들이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두 편을 연달아 보는 걸 권합니다. 기시감이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질 겁니다.

 

Q. 영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단순히 마지막 편지라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과거의 자신과 사랑, 그리고 떠나간 사람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집니다. 편지는 상대에게 전달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남겨진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쓰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더욱 깊게 남으며, 제목의 의미도 영화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Q. 영화에서 미사키가 왜 불행한 결혼을 했는지 이해가 안 돼요.

A. 영화가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아 처음엔 저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사키 부모님 집을 부감 샷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힌트가 있습니다. 장녀에게 쏟아진 과도한 기대와 압박이 오히려 도피처를 찾게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반듯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내면의 출구가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게 하는 설정입니다.

 

 

 

결론

영화를 보는 시점이 달라지면 느끼는 것도 달라집니다. 20대에 봤다면 미사키와 유리의 자매 서사에 집중했을 겁니다. 그런데 사회생활 20년을 지나고 나서 보니, 괜시리 쿄시로의 자신감 회복에 꽂혔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화면 앞에 앉아도 모두가 다른 감정을 가져간다는 것.

자신 없다고 포기하면 쿄시로처럼 오랜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준비하고 있으면, 뇌는 계속 돌아가고 있으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옵니다. 지금 멈춰 있다면 딱 한 가지만 해보세요. 아주 작은 것 하나를 끝까지 완성하는 것. 그게 자신감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