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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특유의 들뜬 분위기와 이 영화가 묘하게 어울리는 독특한 영화. 나카시마 타이치 감독의 2014년작 <갈증>은 실종된 딸을 쫓는 전직 형사의 이야기인데, 추악하고도 아름다운 영화가 있다면 바로 이 작품입니다.

갈증 영화포스터



군상극의 구조 : 인물들이 겹쳐지며 완성되는 유화

<갈증>은 전형적인 군상극입니다. 군상극이란 특정 한 인물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끌고 가는 대신, 다수의 인물이 각자의 시점으로 동시에 서사를 구성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영화는 후지시마 아키카즈라는 전직 형사를 중심에 두지만, 정작 딸 카나코의 과거는 주변 인물들의 입을 통해 파편처럼 드러납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시간선이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팬처럼 쏟아내듯 오가는 전개 방식은, 처음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꽤 진을 빼는 경험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봤을 때는 그게 의도된 설계라는 걸 명확히 알게 됐습니다. 한 장의 캔버스 위에 여러 인물이 붓질을 겹쳐 나가며 완성시키는 유화 같은 구조, 그 자체가 이 작품의 정체성입니다.

아키카즈가 딸의 행방을 쫓으며 만나는 인물들(고등학교 동급생, 중학교 담임, 병원 관계자, 야쿠자까지)은 각자 카나코의 단면을 한 조각씩 내어놓습니다. 이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인물이 완성되는 순간, 관객은 카나코가 단순한 실종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고 보면 영화의 밀도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나카시마 타이치 감독은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도 이 방식을 써왔습니다. 죽은 인물의 삶을 주변인들이 역추적하며 재구성하는 방식인데, 영화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추적 자체를 실시간 폭력의 흐름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비주얼 연출의 수위와 완성도는 개봉 당시에도 압도적이었는데, 지금 다시 봐도 전혀 낡지 않았습니다.

 

연기력 : 아쿠쇼 코지와 신인 고마츠 나나가 만든 절정

개인적으로 일본 배우 중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이 주연이라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이미 높았습니다. 아쿠쇼 코지와 고마츠 나나. 문제는 기대치가 높을수록 실망할 확률도 높다는 건데, 이 영화는 그 기대를 가뿐히 넘어섰습니다. 물론 개인적 취향 반영 결과입니다.


아쿠쇼 코지가 연기한 후지시마 아키카즈는 단순한 막장 아버지가 아닙니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뒤 이혼 과정에서 재산은 물론 딸의 양육권까지 잃고, 형사직에서도 쫓겨나 경비원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인물입니다. 우울증과 정신분열, 즉 현실 인식이 무너지는 증상까지 겹친 캐릭터를 아쿠쇼 코지는 광기와 서러움이 뒤섞인 눈빛 하나로 표현해 냈습니다. 그의 얼굴 하나가 이 영화 전체의 정서적 앵커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더 소름 돋았던 건 고마츠 나나였습니다. 당시 완전한 신인이었던 그녀가 연기한 카나코는 단순히 "사고 많이 치는 10대"가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의 중추신경계 회로를 끊어버릴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말하자면 현실과 유리된 카리스마의 화신입니다. 카나코라는 인물이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파괴된 내면의 산물이라는 점을 고마츠 나나는 거의 침묵과 시선만으로 전달합니다. 제 짧은 기준으로는 일본 영화 신인 연기 중 가장 충격적인 데뷔였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이렇게 압도적인 데는 캐릭터의 설계 자체가 탄탄한 이유도 있습니다. 카타르시스를 관객에게 안겨주는 방식이 일반적인 복수극과는 다릅니다. 카나코는 오가타의 복수를 위해 적의 한가운데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트로이 목마 전략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무너집니다. 그 붕괴를 고마츠 나나가 신인답지 않은 밀도로 담아냈습니다.

 

사회비판 : 10년 전 영화가 지금 더 무서운 이유

이 영화를 단순한 범죄 스릴러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카나코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패한 사회가 어떻게 아이들을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사회비판적 텍스트입니다. 그리고 그게 2014년 작품임에도 지금 다시 보면 등골이 싸늘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카나코의 붕괴는 어느 한 지점에서 시작된 게 아닙니다. 아버지의 상시적 가정폭력, 어머니의 외도로 인해 해체된 가정,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청소년 성 상품화, 마약 유통 구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으려는 부패한 경찰과 야쿠자의 유착. 이 모든 요소가 하나의 아이를 타락시키는 데 동시에 작용했습니다. 실패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망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를 망치는 무한루프 구조.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액션이나 폭력 신이 아니라, 카나코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던 장면이었습니다.

주변에 이 영화를 쉽게 추천하지 못하는 건 단순히 수위 때문만은 아닙니다. "너 이런 스타일 좋아하니?" 하는 시선이 두려운 게 사실이고, 그보다는 이 영화가 건드리는 주제들이 너무 현실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보기 좋게 가공된 추악함, 이 영화의 가장 정확한 설명입니다. 부모라면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전편을 관통하고, 그 메시지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단순한 일본 영화 한 편을 넘어섭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불편함이 쉽게 가시지 않는 이유는 악인이 특벼래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어디에서든 반복될 수 있는 비극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증>은 충격적인 영화이기 이전에, 외면하고 싶지만 끝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에 가깝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내용이 너무 복잡하다는데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나요?

A. 솔직히 첫 회차에 전부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비선형 서사 구조 특성상 과거와 현재가 예고 없이 교차되고, 등장인물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카나코를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도를 머릿속에 그려두면 두 번째 회차에서 완전히 다른 영화로 느껴집니다. 제 경험상 두 번 보는 걸 전제로 감상하면 훨씬 풍부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Q. 고마츠 나나가 이 영화에서 신인이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맞습니다. 2014년 개봉 당시 고마츠 나나는 완전한 신인 배우였습니다. 그런데 카나코 역할의 밀도가 워낙 높아서, 제가 처음 봤을 때 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오히려 더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일본 영화와 드라마에서 꾸준히 주목받는 배우가 됩니다.

 

Q. 폭력적인 장면이 많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가요?

A. 수위가 꽤 높습니다. 신체 폭력뿐 아니라 청소년 성 착취와 관련된 장면이 간접적으로 묘사되고, 전반적으로 잔인한 전개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단순한 자극적 묘사가 아니라 사회 구조 비판의 맥락 안에서 기능하기 때문에, 감내할 수 있는 분이라면 오히려 그 무게감이 메시지를 강화합니다. 호불호가 명확한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결론

제가 본 일본 영화 중 최고작 목록에서 이 작품을 빼기가 어렵습니다. 잘 짜인 군상극 구조, 두 배우의 연기 절정,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도 유효한 사회비판적 메시지까지. 찜찜하고 진이 빠지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찜찜함이 오래 남는 이유는 영화가 현실을 너무 정확히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추악하고 아름다운 영화가 있다면 이것입니다. 일상이 너무 평온해서 뭔가 흔들리고 싶을 때, 혹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왜 이렇게 됐는지를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고 싶을 때, 이 영화는 그 어떤 선택보다 강렬한 경험을 안겨줄 것입니다.